SPECIAL / NO.5
노쇼 사회와 그 적들 (Ⅰ)
- 타임푸어, 그리고 실종된 음식 생산자들 -
올해 한국사회의 주요 트렌드를 꼽으라면 단연 ‘음식'일 것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먹방과 쿡방에 이어 요리 잘하는 요섹남이
한국의 부엌 풍경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만큼 식문화의 관심과 폭도 다양해지고 있는 지금,
고질적인 노쇼(예약 후 취소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행위)는 여전히 골칫거리다.
그러나 이는 유독, 한국의 열등한 문화 의식이 빚어낸 결과일까?
포잉 매거진은 노쇼 특집을 2부로 나눠 1편에서는
노쇼를 일으키는 적들을 사회 구조적으로 바라보고
2편은 외국의 예약 제도와 시스템을 사례로 들면서
식당과 고객이 상생할 수 있는 실험적 대안들을 살펴봤다.

“노쇼에 관한 언론 기사들의 쟁점은 결국 ‘자영업자 불쌍하니즘'에 그친다.
동정에 호소하는 것만이 과연 올바른 대안인가?”

‘서울 퀴진'으로 독창적인 요리 해석을 선보이는 레스토랑 ‘스와니예' 이준 셰프의 말이다. 그는 노쇼를 다루는 미디어들의 방향에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노쇼 상황과 피해 손실액, 자극적인 에피소드만을 늘어놓고는 대안 없이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이다. 최근 10월 한 달 동안, 노쇼를 전면 특집으로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를 살펴보면 ‘연간 4조 5000억원의 피해'와 ‘10만 명 가량의 고용 손실’이 핵심이다. 갈수록 체감 경기가 낮아지고 경제 문제에 민감해지는 한국인들을 자극하기 딱 좋은 통계 수치다. 노쇼의 근본적인 원인 역시 ‘사라진 양심'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저급한 시민 의식과 낮은 문화 수준을 갖춘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킬 뿐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인들의 유별난 양심 실종이 노쇼의 주 원인일까. 외국은 이미 노쇼를 막는 안전 장치를 식당마다 제도화하고 있다. 뉴욕의 펄세이(Per Se)나 일레븐 메디슨 파크 등의 레스토랑은 아예 카드 번호를 입력 안 하면 예약이 안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어느 인기 레스토랑은 예약일 15일 전부터 오전 10시~오후 1시까지 티켓 예매제를 도입해 예매 시간이 마치 한국 대학의 수강 신청을 방불케 할 정도다. 전액 결제나 디파짓 형태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티켓 상품 또한 다양하다. 미국의 대표 예약 어플인 오픈 테이블은 예약 시 카드 번호 입력을 요구하는 옵션을 추가해 예약 보증금과 환불 규정 등을 미리 공지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제도적 장치 또한 외국에도 노쇼로 인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무조건 한국인 = 노매너라는 공식은 자칫 노쇼를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는 오류를 낳는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노쇼만을 문제 삼는 패턴이다. 물론 예약 취소를 당일이라도 해주는 것이 레스토랑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예약석에 방문 손님을 맞거나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예약을 받고 나면 식당은 곧바로 예약일을 엄두에 두고 비용을 들여 식자재와 주류, 다양한 서비스 준비에 착수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지불 가치를 염두에 두고 현재의 자본을 들여 약속을 이행하는 프로세스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임박한 예약 취소나 연기는 노쇼에 버금가는 금전적, 심리적 타격을 식당에 안겨준다. 노쇼는 예약을 가볍게 여기고 취소하는 행위의 극단적인 행태에 더 가깝다.

결국 본질적인 대안은 돌발적인 예약 취소를 줄여가는 예약의 선순환이다. 예약이라는 개념 자체가 접수와 취소 모두가 양립 가능함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취소 또한 식당과 고객 모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합리적인 프로세스가 마련된다면, 노쇼는 물론 장기적인 예약 문화도 자연스럽게 성숙해질 수 있다.

예약은 식당에게 식자재를 미리 준비시키는 도박과도 같다.
노쇼는 이러한 도박을 돌이킬 수 없는 손실로 만든다.

식당: 요즘 젊은 것들이 문제야!

레스토랑 ‘스와니예'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쇼 횟수, 노쇼나 돌발성 예약 취소를 반복하는 고객층을 분석해봤다. 1일 평균 20통 전후로 예약 문의가 들어오는데 그 중 80%가 문의 과정에서 예약 확정이 된다. 이후 확정 예약의 20% 정도가 노쇼 및 당일 예약 취소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예약 취소 시점은 당일 1~2시간 전이 제일 많았다. 가족 단위는 거의 노쇼가 없는 반면, 평일 비즈니스 모임이나 회식 등의 노쇼는 매우 잦은 편이다. 진상이나 노쇼 손님을 공유해도 다른 사람 이름으로 예약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흥미로운 것은 노쇼나 예약 취소를 반복하는 소비층의 태반이 주로 20대 후반에서 30대에 몰려있다는 거였다. 해당 연령대의 고객들이 사적인 모임으로 신규 방문할 때 가장 노쇼가 많이 발생했고, 그 고객들이 다음 예약 때도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면서 블랙 리스트로 자리 잡았다. 일반 캐주얼 레스토랑에서 벌어지는 젊은 층의 노쇼는 더욱 심각했다. 익명을 요구한 연남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너는 “예약제를 실시했다가 하루에 절반 꼴로 돌연 취소와 노쇼가 이어지니 아예 예약을 안 받는다"고 말했다. 다른 곳들은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같은 특수 절기에 음식 값을 올리거나 선결제를 받는 매장도 있었다.

고객: 우리도 불금을 달리고 싶다!

그렇다면 젊은 연령대인 2030 세대의 노쇼, 예약 취소 사유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그들의 대답은 ‘우리도 예약 시간에 도착해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였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에 이르는 대학생과 직장인 20명을 대상으로 각각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업무 과중이나 예기치 못한 야근이 주된 이유로 제기됐다. 평균 한 달에 4번, 1주일에 1번 꼴로 예약을 하는데 그 중 절반인 2건 정도를 위와 같은 이유로 예약 취소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에서 지시한 야근과 업무 연장 등 타의에 의한 노쇼 뿐 아니라 자발적인 근로로 인한 예약 취소 또한 눈 여겨 볼 지점이다.

위 20명 중 5명을 한 자리에 모아 예약과 노쇼 문제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니 ‘자기 시간의 통제 불가능'을 공통된 이유로 꼽았다.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야근과 업무 연장이 일상화되는 패턴 때문에 평일에 예약을 잡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예약을 했어도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올해 8월,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57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10명 중 5명은 야근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의 양적 투입 중심 경영 비중이 크다는 결과도 나왔다.

강제적, 자발적 과로가 이어지면서 예약 시간의 통제는 불가능해진다.

사회적 약속의 가치를 붕괴시키는 ‘24시간이 모자라'

여기에 야근을 하면서 약해진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헬스장을 찾고, 중요한 미팅이나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의 채찍을 스스로 가하는 타임푸어 현상이 발동되면서 예약이라는 사회적 약속의 무게감은 가벼워진다. 두 달 전 취업포털 파인드잡에서 직장인 6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약 71.6%가 ‘24시간이 모자라다' ‘일을 마무리해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응답했다. 때문에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순수하게 식사를 집중하며 즐기는 다이닝을 향유하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자신을 자책하고 바쁘게 만드는 증세, 이른바 ‘타임푸어' 현상은 이제 사회적 질병이 되었다.

또한 타임푸어 현상은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의 노력과 정성의 무게를 외면한다. 컵밥이나 밥버거 같은 초간단 음식들은 타임푸어 현상에 최적화된 한 끼라고 볼 수 있다. 요리사의 수고로 완성된 맛보다 가성비 위주로 구성된 식재료의 조합으로 탄생된 맛을 즐기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다. 점점 경제적이고 기계적인 논리로 조리된 먹거리에 길들여지면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뒤에서 요리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배제된다. 음식 생산자의 가치가 희미해지면서 음식은 돈을 주고 거래하는 교환 가치로 추락하고, 고객-식당-요리사 간의 소통은 방향을 잃는다. 결국 타임푸어는 이기적인 소비 심리를 부추기고, 음식을 먹는 행위와 예약이 타인과 신뢰를 나누는 행위임을 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소통이 단절된 채 노쇼와 돌발 예약 취소가
지속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고객과 식당의 ‘소통을 부탁해'

분명 이 글은 불완전한 보고서다. 대한민국 모든 식당이 경험하는 노쇼의 인과관계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조건 열등한 개인의 문화적 미개함을 지적하는 1차원적 비판보다, 노쇼가 양산되는 맥락을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에 의의가 있다. 생전 어떤 관계도 없던 레스토랑에 대뜸 예약을 했다 돌연 노쇼 하는 불상사를 막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가깝게 소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예약 프로세스 개선이 시급하다.

스와니예의 이준 셰프 역시 “타임푸어 현상으로 비롯된 노쇼를 사람의 인성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다양한 대안들을 제공해 고객들에게 책임감과 예약에 대한 무게를 선택할 수 있는 소통의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준 셰프의 말대로, 향후 티켓팅 같은 외국 사례나 고객과 식당의 접점을 좁히는 온라인 예약 프로세스가 다양하게 시도된다면 올바른 예약 문화의 정상화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경쟁 사회로 무수한 타임푸어가 양산되는 ‘헬조선’ 속에서 음식생산자의 수고와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