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REDIENT / NO.11 사라져가는 음식
한 시간 동안 3가지
하루 동안 76가지
일 년 동안 27,000가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생물들의 수

일찍이 사라져가는 무언가에 대한 경고는 계속되어 왔다. 특히 우리의 생활, 더 나아가서는 몸과 가장 밀접하게 직결되는 식(食)에 관한 적신호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포잉 매거진에서 음식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먹어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이 자리를 준비했다. 하루 평균 76개의 생물종들이 사라져가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취해야 할 액션은 무엇일까?
소멸, 그리고 위기
사라져가는 음식

비단 ‘발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철저히 경계하고 지양해야 할 태도들이 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획일화고 단일화다. 그리고 그것들은 간접적으로 문화와 대치하는 현상 중 하나이다. 문화는 다양화의 산물임과 동시에 다양 속에서 전통을 전통으로 남아 있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보호장치이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화(化)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먹거리에서도 다양화를 이야기해야 한다. 왜? 대답은 간단하다. 소멸과 멸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이 점점 단일화되어 가는 중에, 어느 하나의 종류 혹은 품종이 갑작스러운 병이나 바이러스로 사라진다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마지막 식량인 ‘옥수수'의 멸종이었다. 물론 이런 일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일이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70년 전, 아일랜드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생긴 감자곰팡이병으로 인해 주식으로 먹던 감자를 일체 먹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죽지 않기 위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다. 우리 역시 이러한 일이 생긴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음식 종자의 소멸은 곧 기근의 시작이요, 결국 그 최종점은 인간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년 27,000여 가지의 생물과 종이 사라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미래의 대안 식량으로 벌레를 이야기하는 것도 더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고자 다양한 생물종, 나아가 음식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있어 왔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국제슬로푸드협회에서는 약 20년 전부터 맛의 방주(The Ark of Taste)라는 프로젝트를 이끌어 왔는데, 소멸 위기에 처한 음식 종자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러 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곧 다양하고 풍족한 먹거리가 나고 자라는 환경을 뜻한다. 결국은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하기 위함이다. 마치 대홍수라는 재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주를 만들었던 노아처럼, 맛의 방주 역시 사라져가는 음식과 종자를 담는 생명의 그릇인 것이다. 이런 의미 있는 움직임에 우리나라 역시 재작년부터 동참하고 있으며 현재는 총 47종의 음식이 방주에 탄 상태이다. 과연 그 방주에는 어떤 음식들이 올랐는지 몇 가지를 소개해본다.

1. 푸른섬 제주도에서만 나는, 제주푸른콩장

푸른콩장은 말 그대로 푸른콩으로 만든 ‘장' 종류를 말한다. 이 푸른콩은 제주도에서만 나서 희소성이 높은데, 누룩에만 의존해서 콩을 삶기 때문에 그 방식 또한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본인은 푸른콩으로 만든 된장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된장 그 특유의 큼큼한 냄새가 없었다. 대신 약간의 술 냄새가 풍겼으며 단맛이 강한 편이라 계속 감칠맛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실 푸른콩은 1920년대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반도와 떨어진 제주도 섬에서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되어 왔다고 한다. 사시사철 온난하고 연교차가 적은 제주도에서 만들어졌으니, 그 고소하고 달달한 푸른콩된장 맛은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다!

2.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던 한국식 디저트, 밀랍떡

생소한 이름의 밀랍떡은 찹쌀에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해서 삶은 쑥과 함께 만든 향토음식이다. 예부터 귀한 손님이 오면 화롯불에 구워서 내오는 음식이었는데,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양해서 집의 음식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간식이기도 했다. 현재는 경기도 양평과 강원도 일부에서만 나고 있지만, 예전에는 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기본 음식이었던 것이다. 요즘처럼 설탕을 넣거나 콩가루를 발라 달달하게 만드는 떡에 비하면 밀랍떡의 맛은 다소 심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물리지 않고 계속해서 입에 들어간다. 가깝게는 인사동에서 와플 형식으로 밀랍떡을 팔고 있으니 꼭 한 번 먹어보길.

3. 오로지 사람 손에서만 나올 수 있는, 낭장망 멸치

어렵게 느껴지는 ‘낭장망’이라는 단어는 사실 그물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멸치만을 잡는 어업 방식을 말한다. 대량으로 많은 멸치를 한꺼번에 잡는 게 아닌, 생물 종을 보호하기 위해 나름의 전통 방식으로 적은 양만 잡는 것이다. 조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물 안으로 들어온 멸치만을 잡기 때문에 낭장망 형식으로 잡힌 멸치는 흠집이 거의 없다. 또한 잡힌 멸치를 말릴 때도 잡힌 그물망 그대로 자연 건조하기에 품질이 최상일 수밖에 없다. 바다의 맛을 가장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맛 역시도 최상이다. 강한 조류가 있어야 자연스럽게 그물망에 들어올 수 있다 보니 조류가 거센 완도 지역에서 잡히고 있다.

소멸에 반(反)하는 맛의 방주

사라져가는 음식에 대해 왜 염려해야 하는가? 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할수도 있다. 나 역시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은 이유가 있으며, 살아남는 음식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맛이 있고 품질이 좋아도 경제적, 사회적인 이유로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지 못한 음식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심각한 자본주의 아래, 강력한 구조적 장치가 있지 않은 이상 커다란 자본에 의해 사라져 갈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 와중에 종의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세워 세계적인 프로젝트까지 이끌어온 국제슬로푸드의 운동은 찬사받을 만하다.

다양한 먹거리를 보호하여 종의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은 단순히 한 품종을 보호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그 종과 같이하여 왔던 수많은 삶의 양식과 정서,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된 문화의 다양성이 후대에까지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집집마다, 지역마다, 세계마다 달랐던 음식들이 이제는 꼭 같은 몇 종류로만 단일화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양함으로 우리의 몸을 채워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맛을 지키는 것이 문화를 지키는 일이요, 곧 내 몸을 지키는 일임을 자각하며 이러한 뜻깊은 프로젝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 동안 일산 킨텍스에서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에서 슬로푸드국제페스티벌이 열린다. 과연 진짜 ‘맛’이 무엇이고 맛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쩌면 다양한 음식을 지키는 것은 모두가 함께 지향해야 하는 일이면서도, 실제로는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과제일 수도 있다. ‘다양'의 소멸을 무서워하며 여러 가지 음식을 먹고 자라는 사람만이 ‘맛’에 대해 정말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 모두 맛의 방주에 올라타야 할 때가 아닐까?

연관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