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PEOPLE / NO.10
커피에 숨은 얼굴을 복원하다
스페셜티 커피 고고학자, 서필훈
연남동의 한 귀퉁이, 귀여운 복면 마스코트 간판의 사무실 문을 열자
“일단 한 잔 해야죠?"라고 고소한 커피를 건네는
커피 리브레, 서필훈 대표를 만났다.
자유를 뜻하는 ‘리브레' 이름을 붙이고
세상에 없던 커피를 창조하는 것이 좋았고
커피를 가꾸는 농부의 얼굴을 기억하는 그는
자신이 꿈꾸는 그림을 커피에 차분히 눌러 담고 있었다.
월세가 올라 문화생산자였던 로컬 매장들이 연남동을 떠나도
고집스럽게 싼 가격으로 커피를 만드는 그의 모습은
행복한 예술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로고로 사용되는 복면은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자 마스코트인데 커피 리브레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제 인생에서 굉장히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가 <나초리브레>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복면을 로고처럼 활용한 거에요. 단어 리브레는 스페인어로 ‘자유로운’이라는 뜻이에요. 커피 일하기 전에도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제 캐릭터와 비슷하게 커피 리브레라는 이름을 지었죠.

영화 <나초리브레>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건데 주인공인 수도사가 고아원을 운영하다가 돈이 없어서 아이들이 굶어 죽는 지경까지 가요. 결국 수도사가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멕시코의 유명한 프로레슬링 경기에 선수로 활동하면서 무려 25년 동안 고아들을 돌봐온 거에요.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당시에 3,000명이 넘는 고아들을 키우셨다고 하네요. 그 영화 속 신부님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저도 멋지고 열정을 다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계기였죠. 커피 리브레에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프로필에 쿠바여성사 전공이라는 이력이 독특합니다.
예전 고등학교 때부터 역사 과목을 너무 좋아했어요. 그렇게 서양사학과에 들어갔고 나중에도 나는 당연히 ‘공부할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었죠. 그 흔한 토익 시험 한 번 안 쳤으니까요 (웃음) 대학원에 입학하고 공군 학사장교로 군대를 갔는데 그 때 여러가지 생각들이 많이 바뀐 거 같아요. 실제로 복학해서 대학원을 다닐 때 공부가 너무 재밌고 좋지만, 이걸로 평생 보람과 열정을 유지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학문이 나한테 어떤 이유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도 답을 못 내렸고요.

그러던 중, 쿠바에 50일 정도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겼어요. 쿠바에 있으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이나 가치관을 보고 적잖게 쇼크를 받았습니다. 덕분에 행복이란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게 됐죠. 귀국하면서 제 안에서 좀 더 보람 있고 열정을 바칠만한 것들을 찾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도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일식이었어요. 학원도 다니고 시험도 보고. 근데 하다 보니 저랑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더군요. 어느 날 단골 커피집에 앉아 있다가 문득 ‘아 왜 커피 할 생각을 안 했지?’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일종의 깨달음이랄까요. (하하) 그렇게 커피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그렇게 결심을 하니 대학원 논문 주제도 저에게 깊은 감명을 준 곳의 여성에 대해 써봐야겠다는 솔직한 마음이 생겼어요. 더 이상 고민 없이 원래 전공이었던 러시아 여성사 말고 쿠바 여성사를 택했죠. 처음 접하는 주제다 보니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낮에는 늦게까지 일을 병행해서 논문은 썩 만족스럽게 나오진 못한 거 같아요. 그래도 공부하면서 너무 재밌었고 지금도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간들이 포개어지면서 커피 리브레라는 곳까지 이르렀네요. 스페셜티 커피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예전에 안암에 있는 학교 앞 커피집 ‘보헤미안'에 단골로 다니던 게 커피와 연을 맺게 된 출발점이었죠. 그러다가 커피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몸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아주 막연한 생각으로 시작했죠. 다른 한편으로는 음악이나 예술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는데 재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걸 알아서 (웃음+수줍) 아쉬운 마음이 항상 있었죠. 그런데 커피를 만드는 기술에서 기예로써의 가능성을 보고 또 다른 형태의 예술이 될 수 있겠다고 깨달았어요. 그게 가장 큰 매력이었습니다. 커피를 계속 배우다 보니 정말 몸에 켜켜이 쌓이는 느낌들이 있었어요.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면 커피를 통해 성장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에서(보헤미안) 4년 정도 바리스타, 로스터 근무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그 당시 트렌드를 보니까 스페셜티 커피가 막 발전하고 있는 추세더라고요. 또 스페셜티 커피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게 됐어요. 이전의 커피 조류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산지에 대한 관심들, 그리고 커피도 요리라는 개념이었어요. 때문에 다른 요리와 마찬가지로 재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되지 않느냐는 물음을 가졌죠. 그렇다면 좋은 재료는 어떻게 구할 수 있고 어디서 구할 수 있으며 어떻게 들여오고 가공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됐고, 계속 관심을 갖고 공부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커피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2009년, 커피 리브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표님 프로필에 ‘관계적 총체로서의 커피'라는 문장이 있는데 커피 리브레의 철학과 관련되어 있나요?
우리가 커피 한 잔 마시면 와 완전 맛있다 기분 좋다! 근데 대부분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저는 커피를 만드는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는 관계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옷 하나를 사 입고, 아이폰을 하나 사고 이런 공산품의 개념이 아니라 이건 누가 만들었고 어떻게 만들었기에 이런 맛이 나고 이런 느낌이 들까. 그럼 그 커피를 만든 바리스타로 올라가게 되고, 아 그럼 이 원두는 누가 볶았을까 그 로스터는 또 이 생두를 어디에서 갖고 왔을까. 이 커피 생두를 재배한 농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마을은 이 농장은. 그리고 어떻게 일을 하면서 커피를 만들었을까.

이렇게 점점 더 거슬러 올라가는 커피를 지향하는 거죠. 사실 밸류 체인이 있는 건데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복원하는 거에요. 한 잔의 커피 속에 담겨있는 잊혀진, 숨겨진 얼굴들을 고고학적 작업처럼 발굴하는 것. 커피가 그냥 나와 커피샵 주인의 단편적인 관계가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담긴 여러 관계들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하나의 관계의 총체라는 것들을 인지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일. 그게 제가 생각하는 커피 리브레의 미션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최근 스페셜티 커피를 갖춰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는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대자본과 원산지가 관계 맺는 방식은 좀 다를 거 같은데.
글쎄요. 저희와 프랜차이즈를 완전히 이분법적으로 얘기할 순 없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원산지와의 직거래 교역을 통한 스페셜티 커피로 표현하고 싶은 가치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고 봐요. 예를 들면, 보통 직거래 교역의 가장 큰 장점은 중간 유통 과정을 단순화시키면서 마진을 확보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더 싸게 살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도 그런 의미에서 직거래 교역을 대부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스페셜티 커피를 하는 사람들에게 직거래 교역은 먼저 자기가 원하는 좋은 생두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있고요.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관계성이에요. 산지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다른 걱정 하지 않고 커피 생산과 품질에 집중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그 농부가 살아가는 지역 커뮤니티의 환경이나 사회경제적 문제가 해소되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뜻하죠. 스페셜티 커피가 직거래 교역을 지향하는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스페셜티 커피가 막연히 고급 커피라는 인식이 많은데 질 좋은 스페셜티 커피의 객관적인 요건이 있다면?
맛이라는 게 사실 객관적 요건과 주관적 취향이 결합된 형태니까요. 어떤 것이 좋다고 단순어법으로 말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 일반적으로 스페셜티 커피를 정의할 때 기본적으로 디펙트(Defect bean, 결점두)가 없어야 돼요. 결점두가 만들어내는 맛은 굉장히 화학적이고 금속 맛, 안 좋은 나무 맛, 뭔가 잘못 발효됐을 때 나는 악취 같은 풍미가 나거든요. 이런 것들이 없어야 돼요. 이게 최소 조건이에요. 하지만 결점두만 없다고 다 스페셜티 커피라고 이야기하진 않아요. 마치 우리나라 정부미가 생긴 건 깔끔하지만 맛은 수준 차이가 나는 것처럼요.

그리고 스페셜티 커피가 요구하는 것들이 해당 산지의 Flavor(풍미)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냐에요. 커피도 농산물이기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매년 기후도 달라지고 품종, 토양, 재배, 고도 등 떼루아라고 말하는 자연적 조건에 따라서 맛 차이가 굉장히 달라져요. 특정 지역의 떼루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성분을 갖고 있나가 중요한 조건이구요. 또 하나는 맛의 풍부함과 복합성의 수준이에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미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잠재성을 지녀야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받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좀 더 스페셜티 커피에 쉽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 있을까요?
국내 소비자들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집이나 회사 근처에 있는 자가 로스팅 샵을 방문해서 다양한 커피를 여러 종류 마셔보는 거에요. 로스팅 샵들이 최근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곳들은 프랜차이즈들과 경쟁하기 위해 더 품질 좋은 커피 생두를 정성껏 로스팅해서 신선하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배전도와 가공 방식에 따라서도 다양한 맛으로 세분화 되기 때문에 색다르게 즐길 수 있어요. 그러면서 자기도 몰랐던 취향을 발견하고 커피를 마시는 취향, 공부, 그리고 재미까지 알아가는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거에요.

커피 맛을 구분하고 표현하는 방법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문법과 어휘를 익히는 것이 일단 큰 도움이 되고 그 이후에 그걸 바탕으로 다양한 커피들을 접하며 연습하고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과 함께 커핑을 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커피를 너무 뜨거울 때 다 마셔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정말 좋은 커피는 식으면서 계속 새로운 맛들을 보여주기 때문에 커피를 여유 있게 천천히 즐겨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핑(Cupping)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커피 리브레에서 진행하는 퍼블릭 커핑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커핑을 가장 쉽게 말하면 ‘커피 맛보기'입니다. 커핑은 기존의 커피 산업 필드 내부에서 오랫동안 해왔던 품질 관리 방식이에요. 말 그대로 평가하는 거죠. 어떤 생두를 사야할 지 결정할 때도 먹어보고 판단해야 하니까 커핑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블렌딩을 만들거나 커피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할지 맛을 보면서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과정이 더 체계화 된 것이라고 보면 돼요. 이런 과정이 파편화되면서 각 회사마다 보유한 커핑 방법이 조금씩 다른데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나 컵 오브 엑설런스처럼 국제적인 기구에 의해서 표준화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조금씩 다르면서 평가 기준의 차이도 있다고 볼 수 있죠.

커핑은 기본적으로 품질관리를 위해 만든 거지만 결국에는 소비자, 다른 한 편에서는 생산자와 소통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통할 때 객관적인 문법이나 적절한 단어가 있는 것처럼, 커핑이라는 규칙을 지켜줘야 쌍방 간 소통이 원활하게 되고 그런 것들에 기반해야 좀 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해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인 부분이 당연히 있어요. 이런 두 가지가 결합되어 이뤄져요. 근본적으로는 보편 타당한 소통을 원하는 품질관리 방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퍼블릭 커핑은 커피를 드시는 일반인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을 뜻해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먼저 저희가 판매하는 원두인 커피 가루를 볼에 담아서 뜨거운 물로 천천히 우려내요. 시간이 흐르면서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각각의 커피가 어떤 특성이나 맛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서 소비자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요. 무엇보다 이 커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커피 맛을 체험할 수 있도록 경험을 제공하는 게 저희한테는 퍼블릭 커핑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커핑은 커피 가루를 컵에 담아 뜨거운 물을 붓고 천천히 녹이면서 맛을 보는 형태고 테이스팅은 맛보기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컵에 녹이는 것이 아니라 핸드 드립, 에스프레소 등 추출 도구를 거친 후 맛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커핑 순서는 간단해요. 커피 가루를 갈아서 컵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은 후 표면의 가루를 깨주면서 향기를 맡고 바로 표면의 거품과 함께 걷어 냅니다. 그 이후는 커피가 식을 때까지 40분 정도 천천히 맛을 보며 분석합니다.
싱글 오리진과 블렌드 메뉴의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커피 리브레의 블렌딩이 추구하는 방향도 알고 싶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싱글 오리진은 다른 커피들과 섞지 않고 한 농장, 한 지역의 커피를 그대로 사용하는 거구요. 블렌딩은 커피 로스팅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커피 맛을 만들어내는 거에요. 여러 지역이나 품종의 커피들을 섞어서 자기의 취향이나 방향에 맞게 창조하는 거죠.

블렌딩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배전도에요. 쉽게 말해 볶음 정도죠. 다크 로스팅에 가까운 것도 있고 중간, 약배전도 있어요. 이들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의 지향점은 들어가는 생두의 단맛, 클린컵(잡맛이 섞이지 않은 깔끔한 맛), 밸런스 이 세 가지입니다. 배전도는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공통적으로 만족시키길 원해요.

그 다음에 하위 범주로써는 각각의 배전도가 지향하는 소주제들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에는 블렌딩의 배합 비율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예를 들면 레미제라블이라는 뮤지컬이 있는데 거기에 기본적인 음악이나 스토리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만, 어떤 배우들이 배역을 맡을지는 모르잖아요. 저는 이 배우들을 브라질, 콜롬비아 등 배합 요소로 보는 거고, 레미제라블의 기본 테마는 제가 생각하는 주제죠. 저희 블렌딩의 경우 배드블러드(Bad blood)같은 약배전 커피는 Bright & Syrupy라는 주제를 갖고 나머지 요소들은 전부 다 바꿔요. 노 서프라이즈(No surprise)는 Sweet & Balance라는 주제 내에서 다양하게 변주를 시도하구요. 크게는 단맛, 클린컵, 밸런스에요. 각각의 블렌딩들은 주제, 밑에 하위 범주의 요소들은 항상 변화하는 것. 저한테는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그렇다면 싱글 오리진이나 블렌드 중 최근 소비자들의 선호 패턴은 어떠한지?
일단은 대부분의 카페에서도 일반적으로 아메리카노나 카푸치노를 만들기 위한 커피들은 거의 95% 이상이 블렌딩 커피를 사용한다고 보면 돼요. 싱글 오리진 커피는 브루잉이나 원두 판매에 더 활용되고 있고요. 스페셜티 커피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일반적인 소비자들의 패턴은 처음에 블렌딩 커피부터 맛을 들여서 점점 스펙트럼을 넓혀가요. 그러면서 싱글 오리진 쪽으로 관심 갖는 경우가 많고요.

블렌드 내에서 강배전, 중배전, 약배전이 있는데 기존의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스테레오 타입을 만든 건 스타벅스에요. 스타벅스를 추종하는 여러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생겼고 맛이나 가격, 인테리어, 운영 시스템 등을 스타벅스를 본딴 게 많죠. 그러다 보니까 열이면 열 많은 사람들이 다크 로스팅 커피 맛에 익숙해진 거에요. 그런데 최근 스페셜티 커피 공급자들은 배전도가 조금 내려간 커피들을 선호하게 됐고, 이런 풍미를 대중들에게 알리면서 대중적인 트렌드와 차별화를 시도한 거죠.

제 생각에는 요즘 소비자들의 취향은 더 다양해진 거 같아요. 과일맛이나 복합적인 풍미, 새콤한 산미에 긍정적인 소비자들도 늘어났거든요. 옛날에는 다 강배전 아니면 커피 맛이 이상하다 시다 이렇게 생각했죠. 물론 지금도 다크 로스팅을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도 자기 취향에 맞는 커피를 선택할 수 있는 저변과 마인드가 확장됐다는 걸 느낍니다. 저는 다양성이 그 사회의 발전이나 성숙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하거든요. 커피도 마찬가지에요. 사실 요즘 굉장히 빠르게 다양화되고 있어요.
국내 1호 큐그레이더로도 알려져 있는데 큐그레이더는 어떤 직업인가요? 좋은 생두를 구별하는 기본적인 원칙도 궁금합니다.
큐그레이더는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만든 국제 커피 감별사 자격증이에요. 직업이 아니고 자격증이죠. 커핑이 기본적으로 맛을 보는 거기 때문에 요리에 비유한다면 음식 맛을 보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할 지, 무엇을 첨가하고 뺄 지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맛 감별 능력인 것처럼 커피도 같은 맥락이에요. 저는 어떻게 하다 보니 국내 최초로 따게 됐는데 처음 시험 볼 때는 아무 정보도 없이 보고 떨어지고 실의에 젖었다가 (웃음) 재차 응시해서 합격했죠.

좋은 생두의 최저 기준은 아까 말한 것처럼 결점두에요. 일단 외관부터 깨끗해야 하죠. 벌레 먹고 깨지고, 발효되어 변색된 것들이 섞여 있으면 안돼요. 근데 무조건 외관이 깨끗하다고 좋은 것은 또 아니에요. 결국 먹어봐서 맛이 풍부하고 다양한 미각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지역의 특성을 더 잘 보유하고 있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겠죠? 여기에 소비자들의 성향도 잘 반영된 거면 더할 나위 없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소비 행위에서 끝나다 보니 ‘농산물'이라는 개념이 희박한 편입니다. 커피 또한 ‘제철'이라는 시기적 특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나요?
전문 용어로 계절성(Seasonality)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제철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커피도 농산물이니 당연히 제철에 수확한 것이 품질이 좋죠. 8월에 쌀이 맛있지 않잖아요. 게다가 1년이 지난 쌀은 아무리 맛있는 품종의 특미라고 해도 햅쌀만 못해요. 커피는 쌀처럼 씨앗이에요. 시간이 오래 지나면 숨을 쉬어요. 그러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성분들을 호흡하면서 태웁니다. 그러면 사람이 먹을 부분도 날아가는 거에요. 그 후에는 맛들이 남아있지 않죠. 그런 걸 생각하면 제철에 수확한 커피를 마시는 게 좋아요. 그 중간에 보관 과정도 품질에 영향을 미칩니다. 보통 수확하고 길게는 1년 이내의 커피들을 뉴 크롭(New crop)이라고 얘기해요. 패스트 크롭(Past crop)은 1년이 지난 생두들이고요.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죠.

대륙별로 커피 수확 시기를 보면 중남미는 대략 11월에서 3월 사이입니다. 남미는 너무 넓고 국가별 거리가 너무 있다 보니 특정할 수 없어요. 콜롬비아 같은 경우, 남부는 일 년에 두 번 수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볼리비아는 대략 하반기 정도고 에콰도르도 마찬가지에요. 브라질은 지역별 차이가 있기 때문에 거의 연중 수확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프리카에서 르완다, 브룬디는 3월에서 8월 사이에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11월에서 3월 사이, 케냐는 두 번 수확하는 곳이 많습니다.
최근에 백다방 등 ‘저가 커피’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스페셜티 커피를 공급하는 로컬 매장들이 밀려나는 ‘커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벌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건강한 시장은 몇 개의 기업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이 숨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스턴트 커피는 나쁘고 원두커피는 좋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원두 커피가 유행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서 인스턴트 커피에서도 고급 버전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원두를 섞고 품질에 신경을 쓰기도 하구요. 저는 이게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만약 원두 커피가 나오지 않았다면 질이 안 좋고 싼 가격에만 신경 쓴 커피를 계속 먹었을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원두 커피를 먹고 싶지만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자기의 경제 규모를 떠나서요. 저는 맛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것처럼 가격의 스펙트럼도 넓어지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다만 비즈니스만을 위해 좋지 않은 재료를 쓰거나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건 당연히 경계해야죠. 그렇지 않다면, 가격 자체는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격이 이렇게 높아도 돼? 이런 커피도 있을 거고 1000원 짜리 커피가 진짜 커피일까? 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커피, 커피 문화는 다른 음료 기호품과 다르게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지, 커피 리브레의 행보는 어떤 방향일지 궁금합니다.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순 없지만, 커피라는 아이템 자체가 외국에 이미 자리 잡고 넘어왔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줄 거라 생각해요. 우리 나라는 원래 커피를 많이 먹어왔던 나라에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숭늉, 보리차 안 먹은 지 오래됐어요. 다 인스턴트 커피 드셨어요. 그런데 원두 커피 소비 비중이 높아진 게 중요한 포인트죠. 인스턴트 커피 소비층들이 원두 커피로 많이 이동해 오신 거니까요. 이 흐름은 어느 정도 계속될 거라고 봐요.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성격이 급하고 야근을 자주 하다 보니 집에서 커피 만들어 먹는 습관이 뿌리내리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간편히 인스턴트 커피를 타 마시는 비중이 아직도 높지만 원두 커피 소비는 꾸준히 증가할 거에요.

그리고 저가 커피도 나왔지만 꼭 가격 뿐만 아니라 배전도에 있어서 맛에 있어서, 그리고 커피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 상품에 있어서 굉장히 다양한 아이템들이 앞으로 나오게 될 거구요. 질소를 가공해서 만드는 그런 커피도 있고 더치커피도 굉장히 유행이고 이런 것처럼 상품과 시장, 그리고 소비자들의 취향 이런 것들이 점점 다양해지고 복합적으로 변화되지 않을까. 너무나 당연한 예측이지만 그런 게 있을 거 같아요.

저희도 회사니까 성장이 중요하죠. 하지만 저는 커피 리브레가 매출 성장보다는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커피, 그리고 커피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우리의 정체성을 소비자들에게 좀 더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죠. 거기에 집중하는 걸 우선으로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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