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REDIENT / NO.10 추석
추석 말고 슈퍼문 상차림 어때?
따로 또 같이를 위한 명절파티
나와는 무관한 ‘전통 음식' 강박증

추석이 지났다. 이번 언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추석 풍속도로 보도한 것은 ‘1인 가구'다. TV에서는 1인 가구를 겨냥한 특집 프로그램이 황금 시간대를 채웠다. 더불어 혼자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이 흘러넘치는 때이기도 했다. 반면, 서로 흩어진 채 일상을 살던 가족의 복원을 바라는 미덕은 1인 가구 트렌드와 대조를 이룬다. 1인 가구가 대세라고 외치면서 동시에 그들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미디어, 사회 분위기는 이율배반적인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500만 명을 돌파하며 전체 인구의 27.1%를 차지하는 1인 가구는 이제 낯선 신인류가 아닌 우리 삶의 단면이다. 이 변화는 명절에도 고스란히 스며들고 있다. 제일 피부로 와 닿는 것은 음식. 추석에 지내는 차례상이 지금의 젊은 1인 가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홍동백서부터 갈비찜, 송편 등 추석 음식이라는 전통은 경제규모에도 안 맞고 문화적인 접점도 없는 강박과 부담일 뿐이다. 1인 가구가 대추, 밤, 배 등 각종 과일과 고기류, 생선 등을 준비하기엔 너무 벅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올해 차례상 차림 비용으로 전통시장은 19만 원, 대형 마트에서는 27만 원 가량이 들 것으로 예상했다.

차례 문화와 1인 가구의 삶 역시 거리가 멀다. 지금의 차례상은 과거 유교 사회인 조선의 양반들만 챙겼던 문화다. 본래 추석은 농경 시대의 산물로, 풍년을 자축하고 주변 사람들과 즐기는 대중적인 명절이다. 한 해를 무사히 넘기며 지인과 친지들, 이웃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공동체의 연대를 두텁게 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유교의 가정의례를 기록해 놓은 <주자가례>에서도 차와 술, 과일 등 최소한의 것만을 적어놓았다. 조상은 감사를 드리는 대상 중 하나일 뿐, 추석의 하이라이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이다.

추석을 바꾸는 식자재의 변신

그렇다면 2030세대의 1인 가구에 맞는 추석 음식과 식자재는 무엇일까? 이미 추석은 끝났지만 새롭게 명절을 돌아보자는 뜻에서 가상의 ‘추석 피크닉’을 연출해봤다.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나누는 자리가 굳이 엄숙한 제사상과 지방 앞일 필요는 없다. 시원한 가을 정취와 슈퍼문을 느껴볼 겸 옥상으로 자리를 잡고, 각자 형편과 상황에 맞춰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왔다. 단, 부담을 줄이고 추석이라는 절기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1) 마트나 주변 시장에서 구하기 쉬울 것. (2) 1인 혹은 작은 단위 가구에 적합한 가격. (3) 제철 식재료 등의 조건을 달았다. 3명이 준비해 온 음식을 계산해보니 대략 10만 원 안팎이었다.

- 고등어

친구 A가 가져온 것은 고등어. 추석에 으레 등장하는 해산물은 조기, 참돔, 민어 같이 비싼 생선들이 많은데 갈치를 제외하고는 제철이 아니라서 제맛도 안나고 저렴하게 구하기 힘들다. 반면, 고등어는 9월부터 11월 사이가 한창 물이 올라올 때라 가을에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봄에 산란을 마치고 겨울을 나기 위해 양껏 먹이를 축적했기에 가을 고등어의 지방 함량은 100g당 20g이 넘는다. 그래서 등 쪽보다 뱃살 부분이 훨씬 맛있다. 비린내가 심한 생선으로도 유명하지만 지방이 공기에 닿아 부패하는 정도가 강하기 때문이다. 레몬즙을 뿌려두면 비린내는 물론 구울 때 생기는 탄 부분의 발암 물질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값도 저렴하고 조리법도 다양해 1인 가구의 추석 음식으로 안성맞춤이다.

- 석류

“하루라도 과일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친구 B는 석류를 들고 왔다. 사과, 배 같은 추석 시그니처 과일들은 출하를 앞당기기 위해 생장 촉진제를 쓰는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해 속고 먹는 셈이다. 물론 지금의 과실 재배 기술은 제철 구분 없이 충분한 당도를 머금도록 발달했지만, 가공 생산한 과일은 육질이 무르고 저장 기간 또한 짧다. 나주 신고배 역시 10월 후가 원래 수확 시기이다.

반면, 석류는 9월부터 12월이 제철이다. 대표적인 항산화 식품으로 염증 생성을 억제하고 암세포 성장을 막는데 기여한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해풍의 영향으로 토양에 미네랄이 많은 전남 고흥에서 국내산의 70%가 생산된다. 색보다는 무게로 고르도록 하자. 무거울수록 과즙이 풍부하다. 씨에는 천연 에스트로겐, 껍질엔 탄닌 등이 풍부해 차를 끓여 마시거나 즙을 내먹으면 모든 성분을 섭취할 수 있다. 영양학적으로 토마토랑 궁합이 맞아 같이 먹으면 더욱 좋다.

- 참나물

달걀이나 유제품만을 섭취하는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Lato Ovo) 친구 C는 참나물두부무침을 먹을 생각에 싱글벙글해 있다. 참나물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고 특유의 향을 지닌 알칼리성 식자재다. 셀러리와 미나리의 향기를 합친 맛인데 가볍게 데쳐서 나물을 하거나 생채로 먹어도 좋다. 기존의 삼색 나물 중 시금치는 겨울 채소이며 고사리는 봄에 수확한 것을 말려뒀다가 사용해 제맛이 안 나는 경우가 많다. 참나물 외에 다른 청채로 경종배추도 권할 만하다. 경종은 잎이 길고 새파란 조선배추로 나물을 무치면 씹는 맛이 아삭하고 고소하다.

이 밖에 송편 대신 카스테라를 갖고 온 친구도 있었다. 친구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카스테라는 제사상에 자주 오르는 음식 중 하나다. 논농사가 힘든 현무암 지대가 대부분이라 쌀떡 대신 빵을 쓰는 음식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밀가루를 발효시켜 팥소를 넣고 둥글게 찐 찐빵인 ‘상외떡'을 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카스테라로 변형되어 왔다. 어느새 한 상 가득 차려진 피크닉 밥상과 각자의 음식 기호를 고백하는 시간은 갈수록 흥겹게 무르익어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추석 차례상, 그렇지만 우리 마음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밥상.

나와 너를 위한 명절의 시간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따르면 선물을 주고받고 돌려주는 두 사람 간의 시간만큼 ‘유대'가 발생한다. 그 유대감의 밀도는 곧 신뢰로 이어진다. 선물을 주고받는 신뢰가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될수록 사회적 자본은 한층 두터워지는 것이다. ‘가상 추석 피크닉'은 사실 고향으로, 또는 ‘나 홀로' 남아 명절을 보내게 된 1인 가구 지인들과의 수다에서 나온 꿈 같은 아이디어였다. 누구는 전통이란 허울 속에 마음에 없는 제사를 드리고, 누구는 편의점 추석 특선 도시락을 혼밥하면서 추석의 본래 취지인 감사와 유대는 힘을 잃는다.

송편이 아니면 어떻고 갈비가 아니면 어떠랴. 오히려 나와 우리를 위한 음식, 한 해 동안 사람과 땅의 수고가 깃든 제철의 식자재를 음복하는 것이 더 좋은 선물과 신뢰를 주고받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추석 당일인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세월호 유가족 합동 차례가 있었다. 304명의 영정 앞에 차려진 것은 전통 음식이 아닌, 치킨과 초콜릿, 햄버거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머나먼 선조의 취향보다 지금, 현재를 사는 사람들을 보듬는 음식. 명절이라는 전통이 생명력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연관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