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PEOPLE / NO.9
이국의 공간 경리단길에서
전통의 실험은 계속 진화 중
2013년, 크래프트 비어가 대중문화의 힙스터로 떠오를 때
겁 없이 크래프트 막걸리를 들고나온 안상현씨.
그는 단순히 ‘수제’라는 트렌드에 편승하기보다는
전통주를 문화에 접목해 ‘한국술집’이라는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국수주의, 사대주의, 이색주의를 버리는 대신
동시대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한국적인 美를 구현하고
고급 수제 막걸리로 전통주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나가는 중이다.
경리단길에서 전통의 누룩을 발효시키는 그와 함께
한국술집의 속살을 구석구석 들여다봤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한국술집 안씨막걸리를 운영하고 있는 안상현이라고 합니다.
벌써 안씨막걸리를 시작한 지 2년이 돼간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처음 시작할 때는 경리단길에 크래프트 비어가 팔리니까 ‘크래프트 막걸리'를 팔면 바로 대박이 날 줄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되진 않았어요. (웃음) 하지만 1년 정도 지나자 궤도에 올랐죠. 초기에 제가 수제 막걸리만 취급하겠다고 했을 때, 업계에서는 가격대가 너무 높아서 실현 불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2년이 넘으면서 실현 가능한 일이라는 걸 증명했고, 다른 업체에서 저희처럼 고급 막걸리를 취급하는 일종의 흐름이 만들어지면서 자부심도 생겼어요.
특히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데 어떤 식으로 전통주를 소개했는지?
주류 업계에 있는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사업이 크게 제품 중심과 공간 중심으로 나뉘는 걸 알 수 있어요. 똑같은 위스키나 샴페인이라도 강남 유명 클럽에서는 몇십만 원을 주고 마시는데 마트에 가면 몇만 원 정도밖에 안 한다는 걸 다들 알잖아요. 그건 이 제품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공간이 주는 매력을 더했기 때문이죠. 그게 극대화되는 게 술집 사업인데 술집은 내가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음악, 어떤 분위기,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문화적인 위치까지 모두 포함하고 있어요. 저희가 초창기부터 신경 쓴 문화와 공간의 결합이 전통주라는 고전적인 맥락을 신선하게 느끼도록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들 찾아와 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SNS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투자를 받은 점이 흥미롭다. 어떤 부분을 어필했나?
오히려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매력 있는 명분을 내세웠던 게 투자에 성공했던 요인 같아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한국술집을 하기 전에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 활동을 하면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창업하던 해에 크래프트 비어하고 싱글몰트 위스키가 붐이었거든요. 그런데 왜 젊은 사람들이 외국 것만 찾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만일 외국 손님이 한국에 왔을 때 보여주는 데가 와인바라면 그 사람은 한국 문화가 뭔지 전혀 느낄 수 없겠죠.

젊은 사람들이 갈 만한 한국 술 전문점을 찾고 싶어도 대부분 다 전집이나 조선 시대 주막 등의 이미지에 기댄 곳이 너무 많아요. 그것도 나쁜 건 아니지만, 천편일률적인 동양권 문화의 이미지를 벗고 젊은 외국인들도 한국 술 문화가 세련됐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 잘 먹힌 거로 생각해요. 이런 명분을 통해 투자자들도 재미있는 시도로 봐준 거 같아요. 투자금도 100여만 원 정도라서 큰 부담이 없었죠.
최근 ‘한국 술집의 시각적 구현’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는데 어떤 내용인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술집이라는 게 시도된 바가 없었어요. 왜냐면 조선 시대 주막을 흉내 낸 술집이라고 해봐야 초가집이나 벽에 쟁기 걸어놓는 수준이었거든요. 저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21세기 한국 술집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설치미술을 하는 예술가 7명과 같이 작업을 했어요. 그 작업 과정을 다룬 강연이었습니다. 우리가 외국의 와이너리나 기네스 맥주 공장 같은 곳을 가면 어떤 철학과 역사적 흐름이 있고 그곳에서 예술가들의 교류로 그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우리 한국 술집도 충분히 그러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을 중점으로 발표했어요.
안씨막걸리가 추구하는 한국 술집의 구성요소는?
구성요소보다는 하지 않는 것 세 가지로 보면 될 거에요. 첫 번째는 국수주의, 두 번째는 사대주의, 마지막으로 이색주의에요. 한국 술집이라고 해서 태극기를 걸고 새마을운동 느낌으로 가면 국수주의가 되잖아요. 그렇게 되면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는 거 같아요. 저희는 그런 색깔을 배제했죠. 하지만 무조건 우리나라 것을 버리진 않아요. 안씨 막걸리의 식탁만 봐도 한국의 오방색을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죠.

둘째로 사대주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요새 세련된 술집이나 식당을 보면 이름부터 영어나 프랑스, 독일어로 만들잖아요. 저희는 그걸 바꿔보고 싶었어요. 무작정 외국 것을 따라 하지 않는 것. 우리 가게에서는 음악 한 곡, 재즈 하나를 틀어도 한국 연주자가 재해석한 것만 틀어요. 최소한 재해석으로 사대주의를 피한 거죠.

마지막으로 외식업자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실수인데, 저 역시 그거에 늘 빠질 거 같은 유혹을 느끼고 있고요. 바로 이색주의에요. 튀어야 살아남고 사람들한테 회자되니까요. 근데 튀지 않으면서도 자기 색깔을 뿜어내는 게 정말 멋있다고 봐요. 진짜 매력 있는 사람은 튀는 헤어 스타일을 하지 않고 그냥 청바지에 흰 셔츠만 입어도 멋지잖아요. 저희는 그런 이색주의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저희만의 색깔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죠.
시즌별로 메뉴가 바뀌는 것도 안씨막걸리의 특징이라고 들었다. 추천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
가을을 맞아 사과주 술을 내놓았습니다. 기존에 판매하는 아황주라는 약주를 바탕으로 사과를 절여 넣고 계피, 레몬 등을 첨가한 술이에요. 와인의 뱅쇼와 비슷한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겁니다. 음식으로는 계란 반숙 장조림을 추천해요. 최근 어느 외국 손님이 이 음식에 ‘에그 포르노’라는 별명을 붙여줬어요. 달걀 반숙의 식감이나 촉감이 젤리처럼 말랑말랑하잖아요. 그게 신선하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안씨막걸리가 생각하는 전통주란?
제가 생각하는 전통주는 ‘한국 술'입니다. 와인은 프랑스 전통주고 맥주는 독일 전통주, 사케는 일본 전통주인데 그걸 전통주가 아닌 그 나라의 술이라고 표현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한국에서 우리가 몇 천 년 전부터 만들어 온 술 모두를 한국 술이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도 저희 가게에서는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고, 국내산 햅쌀을 써서 수제방식으로 발효시킨 술만을 취급하죠.
그렇다면 백세주, 산사춘 같은 기성품도 전통주일까?
저는 그런 기성품도 좋은 시도라고 봐요. 대량생산이지만 전통주를 대중화하는 방법 중 하나잖아요. 저희 가게도 전통을 폭넓게 재해석하는 맥락이 있어요. 한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구절판만 나오지 않잖아요. 저희도 오리고기를 구울 때 프랑스 요리 기법인 콩피(Confit) 방식을 쓰거든요. 산사춘이나 백세주 같은 술들도 현대적인 양조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한국 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양조장과 판매자, 또는 전통주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외식업계에서는 오늘 비가 와서 장사가 잘 안되면 사장의 책임이란 말이 있거든요. 비가 오는 건 하늘의 뜻이지 왜 사장의 책임이냐고 하지만 그만큼 외식업자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어요. 그래서 판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다 외식업자 책임이에요. 제가 봤을 때 양조장들은 열심히 좋은 술을 잘 만들고 있어요. 소비자들도 옛날보다는 취향이 다양하고 고급화됐기 때문에 품질이 좋고, 세련된 문화적 경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고요. 그래서 중간 지점에 있는 저 같은 외식업자들이 양질의 문화 경험을 만들어 간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작년, 재작년과 달리 지금은 상당히 전통주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거든요.
경리단길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외국 손님이 많을 텐데 전통주를 접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외국인들도 계층이 다양한데 예전에는 중국, 일본에 비해 한국이 덜 매력적인 국가로 비춰져서 별생각 없이 와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국가가 발전하고 여러 기업의 해외 진출이 성공하면서 지식인층 외국인들이 관심을 갖고 방문하는 추세죠. 그 사람들은 옛날처럼 무조건 미국식 문화만 고집하기보다 한국을 더 알고 싶어서 왔기 때문에 막걸리나 한국 청주, 소주 등 한국 술에 관심이 매우 많은 편이에요. 또 저희를 따라 양조장에 직접 가는 친구들도 있고요. 그런 변화를 볼 때 내가 이 술집을 맞는 방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안씨막걸리의 글로벌 진출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기적으로는 미국 뉴욕이나 중국, 동남아 같은 곳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술집이라는 브랜드가 이자카야처럼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미국이나 남미, 유럽을 가든 전 세계 사람들은 이자카야를 보면 따로 간판이 없더라도 그 술집이 이자카야인 줄 알거든요. 한국 술집 또한 백 년 뒤에는 이름이 없더라도 한국 술집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해외진출을 꼭 해야겠죠. (웃음)
전통주 중에 제일 추천하고 싶은 술이 있다면?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해서 그에 맞는 술을 즐기는 게 맞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술을 고르라면 동몽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술을 만드신 분이 원래 변호사였는데 양조가로 직업을 바꾸신 거죠. 함께 꿈을 꾸자는 뜻으로 만든 술인데 균형이 뛰어납니다. 전통 누룩과 홍천의 찹쌀, 미니 단호박으로 만들었는데 발효와 숙성에만 5개월 정도 걸려요. 고운 빛깔과 은은한 향기, 깊은 풍미가 어우러져서 꼭 한 번 마셔봐야 할 술입니다.
올해 안씨막걸리가 풀어가야 할 가장 가까운 목표는?
올해로 2년이 돼 가면서 어느 정도 한국 술집이라는 브랜드도 알려지게 됐어요. 미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전통주를 생각하면 이곳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죠. 이제부터는 미식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한국에서 외국 친구가 왔다고 하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게 올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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