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COHOL / NO.11 수제 맥주
Beer Blind Taste Test
수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수제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이태원 정도뿐이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크래프트 비어 붐이 일고 그 기류에 힘입어 이젠 서울 여기저기서 쉽게 수제 맥주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수제 맥주 애호가인 일명 ‘맥덕(맥주덕후)’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충북 음성에 있는 수제 맥주 양조장에 다녀오고, 한국에 수제 맥주 붐을 일으킨 다니엘 튜더와 인터뷰하면서 나 역시 수제 맥주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잇고 싶은 맥덕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수제 맥주의 홍수 속에서, 이에 입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맥주 가이드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반문하게 됐다. 그래서 기획해보았다. 수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

선선한 바람이 부는 오후 4시,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펍인 신사동 미켈러 바에 4명의 맥덕들이 소집됐다. 대기업발 맥주조차도 맛있다는 잡덕부터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드는 전문가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자타공인 맥덕들이 모인 것이다. 서로의 맥주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블라인드 테스트에 쓰일 안대로 각자의 특성을 대변하기로 했다.

<수제 맥주 평가단>
  • 병아리 패널 (맥덕 Lv.1) : 초딩 입맛으로 자신을 소개한 병아리는 최고의 맥주는 그저 꿀꺽꿀꺽 목 넘김이 좋고 탄산이 살아있는 라거가 아니겠냐며 이야기한다.
  • 고양이 패널 (맥덕 Lv.3) : 고양이 혀처럼 까다롭고 섬세한 미각의 소유자. 먹고 마시는 것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고양이는 시가와 와인, 위스키를 가장 사랑한다.
  • 킹스맨 패널 (맥덕 Lv.4) :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맥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직접 수제 맥주 브류어리까지 차린, 맥덕 중 최고의 맥덕.
  • 팬더곰 패널 (맥덕 Lv.2) : 묵직한 스타우트나 포터에 빠진 흑맥주 성애자 팬더곰은 술 중의 술은 단연 맥주가 최고 아니겠냐며 나름의 설파를 하고 다닌다.

블라인드 테스트는 총 5개의 맥주를 6가지 기준으로 평가하여 진행된다. 각자 외형(색깔), 향, 촉감(목 넘김), 거품, 맛, 알콜 도수를 평가하여 어떤 맥주인지 맞추는 것이다. 또한 패널들의 취향에 따라 최고의 맥주와 추천 맥주도 선별한다. 테스트에 쓰일 맥주는 미켈러 바에 있는 30개의 탭 중 랜덤으로 5개를 고른다. 비슷한 종류의 맥주가 나올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30개의 맥주를 페일에일, IPA, 스타우트, 람빅, 기타로 나누어 카테고리별로 하나씩 뽑는다.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만개했지만 사뭇 긴장된 기류 속에서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동시에 맥주 한 잔씩을 음미하고 바로 평가를 기재하는 식이었다. 한 시간 동안 총 다섯 라운드가 진행되었고, 테스트가 끝난 후 모두 동그란 테이블에 모여 블라인드 테스트에 대한 결과를 나누었다. 약간의 취기로 모두의 볼이 빨간 상태였지만, 매서운 눈으로 맥주에 대한 총평을 내놓았다.

1번 맥주.
리치한 황금빛이 생각났다. 꽃향기와 과일 향이 주를 이루어서 밝은 느낌이 드는 맥주이다. 부드러운 바디감과 밀도 높은 거품이 느껴졌는데 끝 맛이 쓴 편이었지만 깔끔한 피니쉬로 목 넘김이 좋았다. 알콜 도수 5-6% 정도의 일반적인 맥주로 예상하며 팟타이처럼 동남아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전형적인 페일에일 맥주가 아닐까?

2번 맥주.
맥덕 레벨 1-2 패널들은 라이트한 황금빛, 맥덕 레벨 3-4 패널들은 주황빛으로 예상했다. 솔잎 향과 시트러스, 홉 향이 적절히 섞였으며 첫 번째 맥주에 비해 목 넘김이 더 쉬웠다. 그러나 좀 더 복잡한 맛이다. 홉의 씁쓸한 맛과 파이니한 풀 맛이 강하게 드러났다. 촉감과 거품은 모두 가벼웠으며 알콜 도수 6-7% 정도의 IPA 맥주인 것 같다.

3번 맥주.
모두가 입을 모아 진한 검정의 흑맥주라고 확신했다. 캠프파이어 현장에 와있는 것처럼 진한 스모키향과 짠내, 그리고 고소한 향이 느껴진다. 자두, 건포도, 블랙체리 같은 검붉은 과일 맛과 간장 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맥주다. 선악과가 있다면 이런 맛이지 않을까? 그만큼 매혹적인 맥주이며 알콜 도수 15%가 훌쩍 넘어갈 것이다.

4번 맥주.
패널들의 의견이 저마다 확연히 달랐던 4번 맥주는 모두 다른 외형을 예측했다. 그러나 목 넘김이 매우 어려운 맥주였다는 것과 그만큼 힘들지만 다시 생각나는 오묘한 맥주라는 데에는 동의했다. 신대륙 와인인 메를로의 풍미가 느껴지고 꼬리꼬리한 치즈 향과 단맛이 섞여 용기를 부르는 맥주이다. 꼬냑이나 포트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5번 맥주.
빨간색이나 진한 오렌지색처럼 붉은 계열의 색깔일 것 같다. 탄산과 거품이 거의 없고 시면서도 단맛이 나서 블루베리 원액을 파우치째로 들이키는 느낌이다. 요즘 유행하는 과일 소주가 생각난다. 건포도와 라즈베리 향이 강해서 설탕에 절인 딸기나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알콜 도수는 9-10%로 꽤 높을 것 같다.

총평을 끝낸 우리는 각자가 몇 개의 맥주를 맞췄는지 확인했는데, 애석하게도 100%를 맞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적잖이 당황한 가운데 킹스맨과 고양이는 3개, 팬더곰은 2개, 병아리는 단 1개의 맥주만을 맞췄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친 맥주는 다음과 같았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Insane in the Grain, 7.5%, 페일에일 / Green Gold, 7.0%, IPA / 黑 2014, 17.0%, 스타우트 /
Big Worster, 16.5%, Barley Wine / Raspberry Quadrupel, 13.0%, 기타

만점이 중요한 게 아니라며 서로를 위로한 패널들은 이번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자신만의 취향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단언했다. 신기하게도 서로가 다른 맥주 순위를 내놓았으면서 각자가 추천하는 맥주 역시 모두 달랐기 때문이다.

1) 최고의 맥주 순위

2) 추천하는 맥주

  • 병아리 : 기름진 맛의 맥주는 고기를 먹는 듯한 유사경험을 줄 것이다. 3번을 추천!
  • 고양이 : 위스키와 꼬냑을 마시며 시가를 즐기는 사람에게 4번을 추천!
  • 킹스맨 : 수제 맥주 초심자가 입문하기 좋은 IPA 맥주인 2번을 추천!
  • 팬더곰 : 새콤달콤한 색다른 맥주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5번을 추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도출된 결과이지만, 동점 없이 순위가 매겨졌다. 따라서 수제 맥주를 고를 때 딱히 무엇을 마셔야 할지 모르겠다면, 위의 표가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맥주 가이드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패널들이 추천하는 맥주를 마셔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속는 셈 치고 가이드를 따라가 보아라. 수제 맥주 세계에 입문하여 크래프트 맥주의 다양성과 심오함을 경험할 기회가 될 것이다.

Behind…

사실 이번 블라인드 테스트는 엉뚱한 계기로 시작됐다. 지난달, 미켈러바 서울 오픈 기념을 위해 미켈(Mikkel, 미켈러 C.E.O)이 한국을 방문했었고, 한남동의 앤드 다이닝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장진모 셰프가 미켈러 맥주로 10가지가 넘는 페어링 디너 코스를 선보이는 자리였고, 기분 좋은 충격과 함께 수제 맥주의 새로운 지평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맛있고 다양한 수제 맥주를 한시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었고, 그렇게 수제 맥주 블라인드 테스트는 만들어졌다.

Mikkel(왼쪽)과 장진모 셰프(오른쪽)의 모습

미켈은 하루도 빠짐없이 맥주를 마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대기업이 주류 회사를 독점하는 한국 사회에서, 다른 수제 맥주 회사는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다른 크래프트비어 회사가 경쟁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경쟁사는 맛없는 맥주를 만드는 사람이다. 맛있는 크래프트비어를 마셔본 사람은 계속해서 다른 크래프트비어를 시도할 것이고 언젠가는 미켈러도 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맛없는 크래프트비어를 맛본 사람은 다시는 크래프트비어를 찾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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