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 NO.3
호프가 어때서요?
맛있는 맥주의 조건은 무엇인가
수많은 탭 사이를 헤치고 굵은 팔뚝이 따라주는 맥주잔,
다트와 축구 게임을 즐기며 시끌벅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들,
처음 만난 사람과 공통된 관심사로 열변을 토하는 분위기.
무엇이 떠오르는가? 맞다. 열기 넘치는 영국식 펍의 모습이다.

이렇게 영국하고도 아일랜드에서 셀 수 없이 많은 맥주를 마셨던 로컬 드래프트 마스터 김승남 씨는 그럼에도 “호프가 어때서요?”라고 말한다. 한국식 펍(일명 ‘호프집') 역시 기존의 영국식 펍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한 것이다. 호프집에서 모르는 사람과 친해지기는 어려울지언정 친구들과 으쌰으쌰 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으며, 평범한 술집부터 고급 바에 이르기까지 술이라면 무엇이든 곁들여 먹기 좋아하는 ‘반주'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던가? 강남역 펍의 터줏대감인 뮈렌(Murren)에서 만난 김승남 마스터의 맥주 이야기는 그 어떤 안주보다 감칠맛 넘쳤다.

한국식 펍 vs 영국식 펍

“한국식 펍과 영국식 펍은 확연히 달라요. 일단 호프집에서는 서버가 테이블로 와서 주문을 받은 후 직접 맥주를 갖다 주죠. 그래서 맥주를 따라주는 과정이나 서빙하는 모습을 확인하기 힘들어요. 사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그 과정이 중요한데 말이죠. 가장 신선하고 최상의 상태인 맥주를 볼 수 있는 기회거든요. 이런 점에서 영국식 펍은 맥주 자체를 즐기기 더 쉬워요. 영국식 펍에서는 손님이 직접 바에 가서 맥주를 고르거든요. 맥주가 서빙되는 전 과정을 볼 수 있고 쉽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맥주를 고를 수 있죠.”

사실 한국의 호프집은 여느 다른 식당과 같은 주문 방식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잔 안에 담긴 맥주만 봤을 뿐 맥주가 어떻게 따라지고 서빙되는지 본 적이 드물다. 와인의 경우는 코르크를 따자마자 자기 취향인지 아닌지 테이스팅이라도 할 수 있지만 맥주는 그 과정 자체가 생략된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영국식 펍만 좋다고도 볼 수 없다. 이에 대해 김승남 마스터는 한국식 펍과 영국식 펍의 기능이 다르다고 덧붙인다.

그에 따르면 영국식 펍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에 적합한 새로운 사교의 장이다. 펍에 있는 스크린을 통해 축구 경기를 보면서 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된다. 또한 손님이 바에서 직접 맥주를 고르며 직원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친목을 다진다. 모두가 그날 처음 봤더라도, 전혀 어색한 상황이 아니다. 반대로 한국식 펍은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과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 점에서 한국식 펍은 원래 유지하던 친목을 더 공고히 하는 기능을 한다.

한국식 펍과 영국식 펍이 서로 다른 점은 또 있다. 영국식 펍은 철저히 ‘맥주'가 메인 메뉴이지만 한국식 펍은 ‘음식’이 주된 메뉴이며 맥주는 함께 곁들이는 보완재 성격이 강하다. 물론 한국도 맥주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맥주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맥주 자체에 대한 애호가층은 얇은 편이다. 바꿔 말하면 기호로서 맥주를 즐기기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음식과 분위기, 그리고 맥주를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 ‘치맥’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은 것도 맥주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언제나 음식과 함께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호프식 맥주 푸드 페어링

나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이기 때문인지, 아까부터 맥주만 마시기에는 어딘가 허전했다. 맥주와 함께 무언가를 씹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김승남 마스터는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몇 가지 추천해 주겠다고 했다. 일명 맥주 푸드 페어링이었다.

떡볶이와 뮈렌 페일 에일 : 맵고 자극적인 떡볶이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음식이다. 떡볶이의 쫄깃한 식감과 혀를 뜨겁게 하는 매운맛을 느끼기에 페일 에일만큼 좋은 맥주가 있을까? 과일의 달달한 향과 탄산이 만들어내는 자극은 떡볶이 특유의 매운맛을 더 살리면서 당신의 혀를 자극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초이스다.

카프레제 샐러드와 하이네켄 라거 : 음식 자체가 깔끔하고 가벼운 경우에는 맥주 역시도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야 한다. 샐러드의 상큼함과 깔끔함을 살려주기에는 라거계의 자존심, 하이네켄이 최고이다. 시원한 청량감의 대명사인 하이네켄 라거는 향이 약하고 맛 또한 입안에서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샐러드의 신선함을 잘 캐치할 수 있는 맥주임이 틀림없다.

프렌치프라이와 호프브로이 라거 : 맥주 안주의 표본인 감자튀김에는 웬만한 맥주가 다 잘 어울린다. 그래도 굳이 뽑자면 안주계의 표본에 어울리는 맥주계의 표본, 라거 맥주를 추천한다. 홉의 쌉쌀함이 적어서 튀김 특유의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더 돋보이게 한다. 기름진 느낌을 마무리할 수 있는 청량감도 한 몫 할 것이다. 대중적인 음식에 대중적인 맥주야말로 최고의 조합이 아니겠는가.

웅크린 맥주를 해방시키는 5단계 마법

이제 남은 건 잘 차려진 음식과 함께 최고의 생맥주를 경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체 최고의 생맥주를 마시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해 김승남 드래프트 마스터는 몇 가지 규칙만 따르면 된다고 한다. 별로 어렵지 않은 5가지 스텝만 지키면 최상의 컨디션을 갖춘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에디터는 김승남 마스터가 직접 시연하는 생맥주 서브 방법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우선 깨끗하고 차가운 전용 잔에 45도 각도로 맥주를 따른다. 조금씩 맥주가 채워지면 속도에 맞춰 천천히 잔을 세운다. 그러면 부드러운 거품이 쌓이면서 잔 밖으로 맥주가 흘러넘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이 중요한데 맥주의 청량감과 아로마, 향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한 ‘스킴(Skim)’ 단계이다. 말 그대로 무언가를 걷어내는 작업으로서, 맥주 거품이 잔으로 넘치는 순간 전용 스키머를 45도 각도로 유지하여 거품을 빠르게 걷어준다. 이후 맥주 거품이 잔에서 손가락 2개 정도 높이에 찼는지 확인하고 그 잔을 코스터에 올리면 끝이다. 이제 당신 눈앞에 아름답고 영롱한 황금색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련의 과정이 쉽지 않다고 생각되면 지체 말고 당신 가까이에 있는 하이네켄 스타 서브 인증 매장으로 가라. 드래프트 마스터의 손길이 닿은 최상의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

맥주 시장이 다양해지면서 기호와 개성이 뚜렷한 맥주들이 많아졌다. 너무나도 많은 맥주에 행복한 비명을 지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는 행위에는 왕도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익숙한 입맛이나 낯선 향을 탐험하는 것 모두 맥주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맥주의 T.P.O를 정하는 것이다. 좋은 맥주는 좋은 장소, 좋은 사람과, 좋은 방법으로 마셔야 완성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상상해보라. 늦은 밤 호프집에서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마스터가 서빙해주는 시원한 맥주와 맛있는 음식을 즐긴다면, 그거야말로 지상낙원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