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 NO.1 MIDNIGHT DINER
밤의 허기에서 마음의 위로로
‘심 야 식 당’

모두가 잠든 새벽, 고단한 심신을 이끌고 심야 식사를 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의자에 몸을 기대 한숨을 돌리며 음식을 떠 넣는 순간, 뜨뜻한 식감이 뱃속을 울리며 ‘오늘도 수고했어.’라는 자기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동시에 위장에 든든함이 쌓이며 가슴 속 깊이 박혀있던 답답함과 응어리가 한 올 한 올 풀리게 된다.

최근 영화화된 일본 만화 <심야 식당>은 바쁘고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정신적 허기를 위로하며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이에 만화와 드라마의 컨셉을 본뜬 식당도 조금씩 등장하는 추세다.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식당 주인과 그가 직접 내놓는 음식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연대감을 느끼는 정서가 뭇 우리들의 가슴을 울린 것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심야 식당’은 이 시대가 만들어낸 신조어일까? 로마 시대 서민들이 밤새 술잔을 기울였던 선술집 타베르나부터 연탄으로 불백을 굽는 기사 식당까지, 형태와 기능은 다르지만 예부터 늦은 밤에도 사람들이 함께했던 공간은 인류의 역사와 호흡을 같이 해왔다. 이에 본인은 귀족부터 빈민까지 모두가 즐겼던 심야의 식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각양각색 심야 식당의 문을 열어보았다.

귀족들만 누렸던 고대의 심야 식사

“어서 오세요! 숙소는 2층입니다. 먼저 와인이랑 무화과 좀 드릴까요?”

태초에 ‘심야 식사’는 없었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밤이 되면 모든 활동이 멈췄고, 오직 소수의 고위층만 기름을 써서 등불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렸다. 서민들은 오후 4-5시부터 저녁 식사를 먹었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다. 반면 부유층은 밤이 되어도 식사를 이어가며 정찬을 즐겼다. 당시 서민들이 밤에 식사와 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바르'라고 불리는 경식당이나 ‘타베르나’라고 하는 선술집뿐이었다. 이곳은 무역과 시장이 발달한 도시여서 여관과 매춘의 기능을 겸하는 일종의 복합 심야 식당이었다. 당시 1만 명이 살았던 폼페이에는 이러한 심야 식당이 120곳이나 될 정도로 성행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주로 콩으로 만든 죽을 먹으며 와인과 맥주를 마셨고, 안주로 삶은 돼지고기나 올리브, 무화과, 아몬드 등을 즐기기도 했다. 상류층들은 이러한 선술집을 천박하게 여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폭군으로 변장해 몰래 그곳을 찾아가 여흥을 즐기기도 했다.

중세에도 24시간 음식점이 있었다?

“새벽 내내 정치 이야기를 했더니 목이 칼칼하구만. 여기 에일 한잔 더!”

화폐 경제가 활발했던 중세 시대에는 런던의 템즈 강 주변으로 24시간 운영하는 노점과 음식점이 불야성을 이뤘다. 부자를 위한 고급 요리부터 빈민을 위한 저렴한 음식까지 없는 게 없었다. 주로 다진 고기 요리인 빠테와 라구가 잘 나갔는데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고기는 힘의 원천'이라고 믿을 정도로 육식을 숭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17세기 근세에는 에일 하우스라는 선술집이 영국을 대표했다. 당시 런던에만 약 3,000개의 에일 하우스가 존재했는데 비즈니스와 주민 모임, 투표, 재판, 공연 등의 다양한 행사가 열렸었다. 이렇게 공동체의 정치, 오락, 경제 활동이 복합적으로 결합한 선술집 문화는 끼니와 숙박, 음주만을 해결했던 기능적 형태의 심야식당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집단 정서가 오가는 곳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19세기 공업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의 생활 양식이 바뀌면서 유럽의 심야 식당도 자연스럽게 쇠퇴기를 맞게 되었다. 술집과 숙박이 서로 분리되었고 선술집은 뮤직홀이나 카바레 같은 엔터테인먼트형 주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엄밀한 의미의 ‘심야 식당'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새벽 4시에도 심야 손님들을 위해 묵묵히 불빛을 밝히는 한티역 영동 스낵카 기사 식당. 음식을 준비하는 이모님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한국형 심야 식당의 뿌리 ‘기사 식당’

“정신없이 택시를 몰았더니 벌써 11시네. 출출한데 밥이나 먹고 갈까?"

한국의 심야 식당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국밥집과 포장마차가 있었지만 이들은 ‘밥 안주' 개념의 음식을 내놓는 술집에 더 가까웠다. 식사에 초점을 맞춘 심야 식당은 60년대 중반에 생겼던 기사 식당에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가파른 산업화 및 압축 성장으로 인해 야근과 심야 시간대의 노동자들이 늘어났고 이와 더불어 택시와 기사 식당이 필요해진 것이다.

기사 식당의 음식은 ‘빠르고, 싸고, 맛있고'의 원칙 하에 이루어진다. 메인 식사와 디저트(요구르트나 믹스 커피)로 끝나는 원스톱 시스템에 가격까지 저렴하다. 동치미 국물과 풋고추 등의 밑반찬 역시 택시 기사의 빠른 소화와 비타민 섭취를 도왔던 것들이다. 70년대 들어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보급되면서 돼지 불백 등의 고기 메뉴가 추가되었지만, 여전히 기사 식당의 원칙은 같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현재, 심야 식당은 더욱 새로운 모습으로 불빛을 밝히고 있다. 홍대와 강남, 이태원 등지에는 늦게 찾아온 손님과 함께 하루를 마감하는 가게들이 생기고 있다. 허기진 배와 영혼을 채우는 데 소음이 방해되지 않도록 세 명 이하의 손님만 받는 식당도 생겼다. 소박한 일본 가정식부터 투박한 국밥 그리고 퓨전 비스트로까지, 맛의 종류도 더 다채롭게 변화하는 중이다. 주인과 손님의 경계가 낮은 비좁은 바 테이블에서 서로 어깨를 맞대어 이야기하다 보면, 특별하진 않더라도 근심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행복의 평균을 높이는 심야

먹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일본 영화 <굿바이>에 등장하는 장의사는 경건한 자세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지만, 갓 염을 마친 손으로 복어의 정자요리를 뜯으며 “죽은 생물이지만 너무 맛있단 말이지. 미안스럽게도!”라고 말한다. 우리는 죽은 것을 먹으며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그 때문에 먹는 행위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 끼를 먹음으로써 하루를 버티어 갈 기운과 위로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곧 행복의 총량으로 누적되어 나 자신의 일상을 더욱 견고하게 구축하는 재료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고 나아가 마음의 생채기까지 보듬을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화려한 이국의 요리는 수평선으로 흐르는 삶에 잠깐씩 파동을 일으키는 ‘신기한 양념’일 뿐, 텅 빈 몸과 마음의 여백을 채워주는 내공이 없다. 생일에 아무리 고급스러운 인도 커리를 먹어도 어머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못 먹어 헛헛해지는 것처럼. 원기를 회복하는 소울 푸드의 맛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오래도록 추억하는 기억의 역사가 쌓여 형성된다. 사람들이 소박한 그 맛을 못 잊어 심야 식당이라는 공간을 계속 찾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놀랍게도, 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나 뵈었던 심야식당 사장님들은 ‘미래의 심야식당'에 대해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누구나 평등한 식탁에 앉아 편히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고. 한 기사 식당을 방문했을 때, 카운터에 있는 돼지 저금통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식값을 내고 남은 거스름돈을 모아 기사 분들께 선글라스라도 한 벌 해드리려는 생각으로 마련하셨단다. 1년부터 10년까지, 크고 작은 돼지 저금통들을 보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 버텨온 이곳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고급스런 요리보다 맘 편히 투박한 일상의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랑방처럼 말이다.

오롯이 자신만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앞에 두고 정겨운 사람과 함께하는 심야 아지트가 많아진다면, 우리네 행복의 평균 또한 올라갈 것이다. 밥 한술에 추억 한 점, 이는 세상의 모든 소외를 감싸는 가장 든든한 처방전이다.

연관 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