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REDIENT / NO.9 토종닭
KOREAN NATIVE CHICKEN
토종닭

슬슬 초복이 다가오면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삼계탕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오랜만에 예전에 즐겨 먹었던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예전에 먹었던 맛의 기대와는 달리 그 날의 삼계탕은 치킨 스톡에 싸구려 미숫가루를 푼 맛으로 변해 있었고, 닭도 사이즈가 훨씬 작아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의 방문이 급증하면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려다 보니 음식의 퀄리티 유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10년 이상 즐겨 찾았던 단골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고, 이제 삼계탕을 어디 가서 먹어야 하나 하는 고뇌마저 들었다. 그러면서 삼계탕과 닭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설렁탕 맛은 소고기가 좌우하고, 매운탕 맛은 생선이 좌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삼계탕의 맛 역시 닭고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망각하면서 삼계탕을 먹어왔다. 그저 국물이 맛있고 고기가 부드러우면 맛있으려니 생각했고, 토종닭으로 끓이면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생겨 일부러라도 더 작은 육계 같은 닭들을 선호했던 것이다. 나는 삼계탕의 아픈 경험을 만회하고자 한국에서 제일 맛있는 닭을 구해 보기로 팔을 걷어붙였고,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닭과 삼계탕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괴담’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일반 육계보다는 토종닭이 맛있을 거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한국 토종닭 협회에 연락을 했고, 문정진 상임부회장님을 통해 그동안 토종닭에 대한 몰랐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종닭 감별사이신 문정진 부회장님은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토종닭이 지닌 영양 측면과 사육방법을 강조했다. 토종닭은 일반 육계보다 30배가 넘는 철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필수 아미노산 등도 그 차이가 크다. 또한 토종닭은 사육 방법 및 사료에 따라서 맛과 향이 굉장히 다르다. 한우와 함께 육류 중 유일한 신토불이 식재료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토종닭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 지역에서 예전부터 길러오던 고유 품종의 닭’이다. 그러므로 토종닭은 하나의 종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에서 재래식으로 사육하는 모든 닭을 포괄한다. 그 범주 안에는 한협 3호, 우리맛닭, 긴꼬리닭, 횡성약닭, 현인흑계 등 다양한 종류의 닭들이 존재한다. 현재 정부에서는 위에 언급된 닭 품종을 지키기 위해 많은 연구와 투자를 하고 있다. 또한 가짜 토종닭의 유통을 막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축산법 시행규칙에 따라 토종닭 인정 기준을 마련했고, 한국 토종닭 협회에서 인정심사를 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토종닭은 일반 육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 좋은 식재료이며 많은 분이 토종닭을 지키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토종닭이 좋은 닭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할만한 닭을 키우는 안성의 조아라 한약닭 농장을 찾아갔다. NHK 등 해외 방송에서도 소개된 한약닭 농장을 운영하는 조이형 대표는 무항생제 인증, 으뜸이 인증, HACCP 인증을 취득한 한협 3호를 한약 찌꺼기를 발효한 사료를 먹이며 재래식으로 방사해 키우고 있었다. 한국 토종닭 협회장을 지냈던 조이형 대표에게 사육 방식부터 사료까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며 꾸준한 연구와 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유럽 와이너리 장인과 같은 느낌을 받았고 이곳의 닭은 정말 안심하고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장에서 키우는 닭을 처음으로 만져보고 같이 놀아도 봤다. 생각보다 닭은 온순했고, 털에는 윤기가 흘렀으며 매우 부드러운 촉감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고양이를 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농장이 좋고 닭이 좋은들, 제일 중요한 건 맛 아닌가. 드디어 토종닭을 한 마리 잡아 맛을 보았다. 생닭에서는 보통 약간의 단백질 비린내가 나지만 이곳 농장의 닭은 비린내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향기로운 한약재 냄새가 났다. 사료가 고기 전체에 배어서 그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약 1시간 동안 압력솥에서 각종 약재와 함께 푹 곤 백숙을 맛본 순간, 그동안 토종닭이 질기다고 여겨온 편견이 뒤집히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일반적인 육계처럼 으스러지는 듯한 힘없는 식감이 아닌, 아삭하면서도 굉장히 재미있는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보다 향이 기가 막혔다. 정말 토종닭도 닭에 따라 그 식감과 향이 천지 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먹고 나니 몸에서 훈훈한 열이 올라왔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씻은 듯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보약을 먹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삼계탕 한 그릇 맛나게 먹어보겠다고 토종닭 협회 분들을 괴롭혔고, 농장까지 무작정 방문하는 일을 저질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한우와 토종닭을 같은 시야에서 보게 되는 큰 수확을 얻었다. 그동안 닭에도 깊이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고, 맛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금은 많은 분들이 매일 종자를 연구하고, 농장에서도 더 맛있는 닭을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시는 모습에 감동하게 되었다. 한우를 명품화하는 것 못지않게 닭도 명품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돌아오는 중복에는 조아라 농장에서 닭을 주문하고, 집에 가마솥을 놓아 직접 용봉탕을 끓여 먹을 거다. 혹시 드시고 싶은 분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라. 초대해서 같이 이 아름다운 먹거리를 즐기고 싶다. 토종닭은 노력이라는 감동, 진심에 대한 존경,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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