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COHOL / NO.9 전통주
전통주는 “인연"이다

매실 원주라는 술을 사서 그 공급가가 궁금해 유통사에 전화 한 통을 걸었다. 그리고 부국상사 대표님과 미팅을 했고, 문배술 대표님을 소개받아 문배술 양조장에 가게 되었다. 그 후 문배술 대표님을 만나 술을 마셨다.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분들과 알게 되었고, 며칠 전에는 서울 외신기자 클럽에서 주최한 전통주 테이스팅 행사의 진행과 전통주 관련 영문 프레젠테이션을 맡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도 전통주와 관련한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되어 다음 주쯤에 모두와 술자리를 가질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서로에게 잔을 권하고 부딪히며 관계를 만들어왔다. 힘든 세상에 마음 맞는 사람과 술 한잔을 하다 보면, 그 순간만큼은 무척 아름다워지듯이 술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이에 이번 달은 다섯 달 동안 전통주를 접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하려고 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통주 테이스팅을 진행하면서 느낀, 우리 술에 관한 자부심을 보여줄 것이다.

인생의 반을 유럽에서 살았고, 술이라곤 와인과 위스키밖에 모르던 반쪽 외국인 놈이 전통주라는 것을 배워보고 싶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의심이 들 법도 했지만 나를 믿고 도와주신 분들이 계셨다. 문배술 양조장과 연결해 주신 전통주 유통계의 대부 부국상사의 김보성 대표님, 전통주와 관련된 자리에 항상 초대하여 음식과 전통주에 대해 함께 고민해 주시고 회식 때마다 술을 보내주시는 문배술 전수가 이승용 대표님, 막걸리에 관한 A to Z를 알려주시고 송명섭 명인과 만나게 해주신 한국 최고의 막걸리 전문가 이승훈 님, 술에 관한 방대한 지식으로 항상 최고의 강의와 더불어 오미로제 와이너리에 초대해 주신 이종기 교수님, 전통주와 관련한 취중 진담에 귀 기울여 주시고 서울 외신기자 클럽 전통주 행사에 진행과 프레젠테이션을 맡겨주신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님, 그리고 서울 촌놈에게 본인이 평생 모으신 술을 기꺼이 꺼내주시며 ‘이제 죽력고를 마셔봐.’라고 하셨던 송명섭 명인님까지. 한국 전통주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이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위에 언급했던 행사를 소개하자면, 여러 양조장의 협조를 받아 외국 기자에게 한국의 전통주를 소개하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대동여주도의 이지민 대표님이 기획하셨고 서울 외신기자 클럽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하였다. 약 70명의 외신기자가 참석하여 전통주 프레젠테이션 및 테이스팅을 즐겼다. 8종의 전통주(문배술, 매실원주, 이강주, 오미로제, 대통대잎주, 솔송주, 오메기술, 송화백일주)가 소개되었는데, 기존의 외국 사람들이 소주나 막걸리 정도를 한국의 술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깨는 기회였다. 한국에도 이처럼 훌륭한 과실주와 증류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꽤 감탄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외국에서도 한국 전통주가 큰 사랑을 받지 않을까 확신하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전통주라는 단어 자체는 굉장히 슬프다. 주류 선진국의 경우, 자기 나라의 술을 전통주라고 명시하는 나라는 없다. 적절한 명칭 없이 제조 과정과 도수가 제각각 다른 술들을 한데 묶어서 전통주라고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창피하다. 또한 전통주라는 어감도 올드해서 20-30대의 젊은이들이 구매하는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행사 때 선보인 8종의 술들은 외국 술 들과 유통 및 현지 가격과 비교했을 때 퀄리티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았다. 결국 시스템만 잘 정비되어 발전해 나갈 일만 남은 것이다. 저명하신 어떤 분은 5년 안에 한국의 소주문화가 한계를 맞아 대중의 외면을 받을 거라고 했다. 그 시기가 도래했을 때, 이 거대한 주류 및 음주 시장을 외국 술에 넘겨줄지 혹은 전통주를 발전시켜 내수 경제를 활발히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시장은 점점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전통주는 미숙한 한국 주류 시장의 희망이 될 존재다. 대중들은 이제 양이나 가격보다는 맛을 따진다.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서 입맛이 점점 고급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최근 셰프들이 주목 받는 모습을 보면 우리 주류 시장의 미래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것 같다. 대중들은 조만간 맛과 건강 등의 이유로 소주를 외면하고 고급스러운 술을 찾을 것이며, 그 시기는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이에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이 시장을 외국 주류 회사에 넘기는 것은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전통주라는 이름부터 곰곰이 생각해보자. 전통주는 소주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맛도 훌륭하지만 와인 및 위스키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다.

처음에는 한국 술에 관한 궁금증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과거와 미래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맛보았다. 현재 한국 전통주를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 아직 발전해가는 단계이며 판단은 조금 더 뒤에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점은, 생각보다 한국에 좋을 술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아직 대중화가 되기에는 이르지만 점차 소주 시장을 밀어내고 주류 시장을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날을 위해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 전통주는 그런 분들과 나라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연결해준 다리였다. 전통주는 나에게 한없이 고마운 존재이며, 앞으로 더욱 꾸준히 공부해야 할 대상이다. 전통주 덕분에 평생 모르고 지냈을 분들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전통주는 나에게 인연이다. 나는 이분들과 빛나는 내일을 희망하며 지금도 술을 마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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